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인터뷰에서 아비투스를 설명하며 “취향에도 계급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정말 없이’ 살아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경험은 50대가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특정한 장소에 들어가면 계급적 위축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제가 와인을 안 먹어봤겠어요? 이제는 많이 먹어봤죠.”라고 하면서도, 와인바에서 “맛있네”라고 느끼는 그 순간조차 자신과 그 공간 사이의 괴리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진은 이러한 감각을 정주영 회장의 사례와 연결해 설명한다. 자수성가한 인물이지만 ‘소탈하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매우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형성된 아비투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감각 구조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남아 있어, 아무리 큰 성공을 이뤘더라도 선택의 방향은 어린 시절의 감각을 계속 따라가게 된다. 그는 이 사실을 두고 “결국 취향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점이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비투스는 취향·선택·감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아비투스(habitus)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개념이지만, 단순한 사회학 용어로만 머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한 사람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깊고 조용한 언어라고 느낀다. 아비투스는 개인이 살아오며 축적한 경험과 환경의 흔적이 몸과 마음의 결로 스며든 것으로, 우리가 무엇을 편안하게 느끼고 무엇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지, 어떤 장면에 갑자기 마음이 움직이는지까지 설명해 준다. 사람은 스스로 세상을 자유롭게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오래전부터 몸 속에 자리한 감각의 방향 속에서 판단하고 있을 때가 많다. 어떤 공간에서는 이유 없이 편안하고, 어떤 음악에서는 오래 묻어 있던 감정이 조용히 떠오르며, 어떤 사람을 만나면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모두 이 감각의 구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그냥 내 취향이라서”, “그냥 느낌이 그래서”라고 말하지만, 그 ‘그냥’ 뒤에는 시간이 만든 깊은 층위가 놓여 있다.
그렇다고 아비투스가 인간을 묶어두는 숙명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세계를 지나왔는지 보여주는 ‘내적 지도’에 가깝다. 이 지도는 어린 날의 기억, 집 안의 공기, 관계의 방식, 몸에 남은 말의 온도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감각을 만든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이 보이지 않는 지도 위에 빛을 비추는 일이다. 내가 무엇에 감응하고 무엇엔 끝내 반응하지 못하는지, 왜 익숙한 것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때로는 낯선 세계를 그리워하는지, 그 모든 기원이 이 안에 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이 이해를 통해 달라진다. 누군가의 말투, 선택, 속도, 주저함은 그가 걸어온 세계의 흔적이며, 각자가 다른 환경 속에서 쌓아온 고유한 결이다. 사람은 단일한 순간으로 판단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의 밀도를 지닌 세계들이 겹쳐져 지금의 응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해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가 조용히 펼쳐지는 순간에 가깝다. 나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잠시 바라보는 경험, 그 느린 접촉이 바로 관계의 시작이 된다.
중요한 것은 아비투스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언제나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걸을 때, 한 문장이 마음의 구조를 흔들 때, 새로운 관계가 감정의 방향을 바꿀 때, 그 모든 경험이 기존의 아비투스를 미세하게 흔들고 새로운 층위를 만든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갱신되는 세계’이며, 자기 이해는 곧 자기 변형의 출발점이 된다.
결국 아비투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단지 지금 이 순간의 표면이 아니라, 살아온 모든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하나의 풍경이라고. 당신의 선택은 그 풍경이 향하는 방향 속에서 태어났으며, 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더 부드럽게 바라보고,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며, 세계를 이전보다 더 다층적으로 읽게 된다. 아비투스는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자,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조용한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가장 깊은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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